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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 빼려고 시작한 주말 등산,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작성자
박경태
작성일
2019-04-19 13:05
조회
738
[운동하기 좋나 봄] 정복하는 산에서 받아들이는 산으로... 주말이 기다려진다

밖에서 무언가 하기 딱 좋은 계절, '이제 슬슬 운동 좀 해야 하는데' 하고 고민 중이신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두툼한 외투를 벗어 던지고 산으로 공원으로 나가 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작년 봄, 나는 주말에 등산을 하기로 결심했다. 목적은 다이어트를 위해서였다.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던 중 등산이 눈에 들어왔다. 가능한 회사 일과 육아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새벽에 등산을 하기로 했다. 현재의 일상에서 운동에 시간을 할애할 경우 오래 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지인에게 등산을 하면서 뱃살이 많이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런데 새벽에 등산을 하자니 조금 두려웠다. 혼자 새벽에 산에 오르는 것은 무서웠다. 등산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주 활동하는 인터넷 동호회 모임에 등산을 같이 하자고 글을 올렸다. 새벽 6시~8시까지, 구체적인 등산로까지 구해서 올렸는데 반응이 차가웠다. 아무도 같이 하자고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혼자서 등산을 시작했다. 오전 6시는 조금 어두워서 소심하게 7시에 등산을 시작했다. 그 시간에 등산을 하면서 보니 산에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자 혼자서 오는 등산객도 많았고, 내가 등산을 시작하는 7시에 이미 하산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나면 용기가 더 생기는 법이다. 혼자 등산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한 주, 두 주 꾸준히 했다. 그러다 보니 등산을 같이 하자는 친구가 나타났다. 그렇게 그 친구와 1년 가까이 주말 등산을 이어오고 있다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은 많다. 걷기도 있고, 마라톤도 있다. 홈트레이닝도 있다. 내가 주말에 등산을 한다고 하면 주위의 반응 중 하나는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힘들게 올라 가냐?'이고, '많은 운동 중에 왜 하필 등산이냐?'는 것이었다.

모든 운동이 힘든데, 유독 등산이 힘들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아마도 중간에 그 힘듦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걷기나 마라톤은 중간에 힘들면 포기할 수도 있다. 뛰거나 걷다가 힘들면 택시를 타고 가도 된다. 다른 운동도 힘들면 멈추면 된다. 지상에 발을 딛고 있으니 멈춤과 시작이 자유롭다.

그러나 등산은 중간에 포기를 해도 올라갔던 산길을 다시 내려와야 한다. 어쨌든 내 몸에 의지해서 시작과 끝을 마무리 해야 한다. 산에서 택시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면에서 등산은 강제로 운동을 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비용적으로 저렴하다는 것 이외에 내가 가장 최고로 꼽는 또 하나의 장점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을 피우고, 여름에는 초록으로 싱그러움을 뽐낸다. 가을이 되면 붉은색으로 치장을 한다. 겨울산의 설경은 가던 길을 멈출 만큼 아름답다.

게다가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다. 오늘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가도 된다. 선택의 여지는 많다. 어느 쪽으로 가던 정상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30분 남았다는 거짓말

젊었을 때는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 치악산, 계룡산 등 유명한 산 위주로 다녔다. 방학이나 휴가 때마다 정복하듯이 등산을 하곤 했다. 그때 등산의 목적은 운동이 아니라 성취였다. 젊은 치기에 남에게 보이고 싶은 트로피 같은 것이었다. '나 이런 산도 가봤어, 정상도 정복했지' 하고 자랑을 하려고 말이다.

정복하듯 산을 올랐으니 주변의 풍경보다 정상만을 향해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정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부분 초행길이었으니 시간적인 감각도, 거리에 대한 감각도 부족했다. 어쩌면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생각에 시간과 거리에 대한 개념을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상에 올라서겠다는 패기만 있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있다. 설악산에 오를 때였다. 산 이름 중에 '악'자가 들어가면 대부분 험악한 산이라는 말이 있다. 등산도 그만큼 힘들다. 등산을 하면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하산하는 사람을 만났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냐는 나의 질문에 '정상까지 30분 남았으니 힘내시오'라고 했다.

'정상까지 30분? 꽤 멀어 보이던데?' 의심은 했지만, 작은 봉우리가 어딘가에 있는 줄 알았다. 30분이라는 말에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다시 힘을 내어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걸었다. 물론 30분을 올라가도 정상은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 다시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30분 남았다'는 말을 두 어 번을 더 듣고서야 정상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에 물었을 때는 약간 약이 올랐다.

"아까 내려가던 분도 30분이라고 했는데요? 왜 다들 30분이라고 하죠?"
"아, 이번엔 진짜예요. 진짜 30분만 올라가면 된다니까요."
"거짓말 아니죠?"
"아, 이 아가씨… 속고만 살았나."
"속아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괜한 사람에게 짜증을 냈다.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분의 말 대로 30분 뒤에는 정상을 만날 수 있었고,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내려올 때,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30분 남았다'는 거짓말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끔 살면서 그때를 생각한다.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30분 남았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용기도 낼 수도 있었다. 만약 3시간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더 많이 쉬거나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30분이라는 말은 고민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30분은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운 시간이니까.

등산으로 얻은 것들

등산을 시작한 지 1년. 동료의 말처럼 획기적으로 뱃살이 빠지진 않았다. 다만 좋아진 점을 들자면,

첫째, 체력이 좋아졌다. 몸의 체력뿐만 아니라 마음의 체력도 좋아졌다. 등산의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다 보면 무념무상이 된다. 일단 몸이 너무 힘드니까. '이 고개만 넘어가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힘겨움을 넘기고 하산을 할 때쯤엔 신기하게도 고민거리도 단순해지곤 했다. 다리가 뻐근해지면서 근육량이 늘어난 것은 덤이었다.

두 번째, 내 몸에 집중하는 법을 익혔다. 등산은 자칫 무리하면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오르막길에서는 호흡을 고르며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발걸음에 집중한다. 나의 리듬대로 보폭에 맞추어 가는 것이 꾸준히 갈 수 있는 방법이더라. 중요한 것은 빠르게 가는 것보다 내 몸을 지키며 꾸준히 가는 것이었다.

셋째로 등산을 같이 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축복이다. 혼자서 가면 아마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등산하는 것을 유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친구와 같이 하니 오래 할 수 있었고,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그녀와 같이 등산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로 힐링이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꿈을 이야기하고,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다. 정상에 올라서 만끽하는 풍경은 매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세먼지가 없거나 비가 오지 않는 날,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산은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맑은 날이든, 맑지 않은 날이든, 그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등산이었다. 마치 좋든 나쁘든 매일 받아들여야 하는 내 일상처럼. 젊은 시절, 정상만을 향해 정복하듯 달려가는 태도에서, 지금의 나는 나이에 맞는 리듬과 속도를 갖추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 주에 등산 갈 거지? 그곳에서 만나자."

나는 오늘도 등산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그녀와의 힐링 시간을 기다리며, 이번 주에 산은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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